친애하는 형제여,
이 질문은 두 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각 질문에 대해 별도로 답변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첫째: 우상을 파괴하는 것과 코란을 불태우는 것의 차이점입니다.
첫째,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 현실과 허구, 유일신에 대한 믿음과 우상숭배를 같은 저울에 올려놓는 것은 천국과 지옥을 비교하는 것만큼이나 이치에 어긋나고 상식에 어긋나는 비교입니다.
코란의 다른 이름 중 하나는
Furkan
이것은 옳고 그름, 진실과 거짓, 유익함과 해로움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책을 의미합니다. 우상은 돌, 나무, 그리고 지적인 기반이 없는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다른 물체들로 구성된 거짓과 허위의 상징입니다. 지적인 기반이 없는 우상숭배자들의 유일한 무기는 맹목적인 힘입니다. 자신이 보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고, 보는 것에 따라 다른 걱정을 품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우상을 보호하며, 맹목적인 힘으로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지적 수준의 부족으로 인해, 코란의 과학적, 지적, 합리적인 논쟁에 저항할 수 없었던 무슬림들은 수십 명의 무슬림을 잔혹한 고문에 가하고, 일부를 죽이고, 모두에게 집과 피난처를 버리고 외국으로 이주하도록 강요한 이들에게 비둘기를 풀어야 했을까요?
이슬람의 목표가 포도 재배자를 때리는 것이 아니라 포도를 먹는 것과 같듯이, 코란은 메카 시대 13년 동안 이교가 잘못된 생각이며, 우주 궁전에 오직 한 명의 주인, 한 명의 술탄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물질주의적 이교도들은 깊은 성찰을 하지 못하고 진실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그렇게 하는 걸 봤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이슬람 종교
그는 이처럼 단순한 마음가짐을 가진 무지한 자들에게 지적 기반을 다질 모든 기회를 주고, 사고의 분위기 속에서 훈련하게 하며, 눈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격려했습니다. 그러나 우상숭배자들, 즉 우상 외에는 가치를 지니지 않은 이들을 바로잡는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그들에게 진실을 보여주고, 그들이 막고 있던 진실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우상숭배자들의 지도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다른 이들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게 하거나, 그릇된 사고의 상징적인 근원인 우상들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포도 섭취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이슬람 종교는 포도 재배자들을 징벌하기보다는 포도 밭에서 가시덤불을 뽑아 버리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그 가장 명확한 증거는 메카를 정복한 무함마드 예언자가 메디나 공격과 우후드 전투 후 70명의 동료를 죽인 무자비한 살인자들을 용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반하여, 하나님은 옛적 백성들을 멸망시켰던 것처럼 이 백성들도 멸망시킬 수 있지만, 그 선택은 너의 재량에 맡겨졌다고 말씀하셨는데,
“하느님, 그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은 무지하고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를 버리고 어디에나 유일신 신앙을 전파하며 당신을 진심으로 섬기는 세대가 오도록 기도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표현들은 무함마드 예언자의 주된 목표가 믿음이라는 포도주를 마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시게 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슬람 종교가 다른 종교 신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표출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허용한 사실, 나자란의 기독교인들이 평온하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스크를 할당해 준 사실, 메디나에서 유대인들과 첫날부터 함께 살 수 있도록 필요한 합의를 맺은 사실은 이슬람이 종교 및 양심의 자유에 제공하는 기회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무슬림과 이슬람이 세계를 지배했던 천 년 이상 동안, 이슬람 지역에서도 비무슬림들이 안전하게 살아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이 자유가 인정받았다는 또 다른 증거가 아닙니까?
두 번째 질문: “선지자 아브라함은,
‘우상들은 여러분이 질문을 할 때 여러분에게 대답할 수 있나요?’
귀하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드립니다:
‘아니!’
답변을 받았습니다. 불신자들도 우리에게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하면 우상숭배자가 되는 건 아닐까요?”
첫째,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보이지 않는 진리)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신앙 원칙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우상과 비교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인식 방식입니다.
눈에 보이고 무관심함이 명백한 어리석고, 벙어리이며, 귀머귀인 우상들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가 필요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적 관점에서 우리는 계시를 고려하지 않고, 선지자를 생각하지 않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지 아닌지를 말할 기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와 일체성을 배우는 것처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의존해야 할 단 하나의 근원, 즉 계시가 있습니다. 공정한 논의에서는 이 기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눈으로 보는 우상들이 말하는지 아닌지를 이해하려면 그것들이 무생물이라는 것을 알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시각이 아니라 이성, 논리적 추론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나요?”
우리의 답변
“네”
왜냐하면 많은 면에서 코란처럼 유일무이한 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코란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15세기 동안 하늘에서 온, 신성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해 온 이 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감, 은혜, 꿈, 직관 –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들 – 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마치 영적인 라디오와 전화처럼, 우리에게 신체적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것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존재가 보이고, 듣고, 말하는 존재를 창조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요?
실천하는 사람이 가장 잘 알듯이, 아는 사람은 자연히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담부터 무함마드까지, 우리가 아는 한 인류 공동체에서 –
104권의 책과 페이지
하나님은 [이 책들을] 보낼 때, 그 책들을 전달받은 사자들에게도 특별한 영적 무장/기적을 주어 그 책들이 하나님이 쓴 것임을 증명했습니다.
모든 형태의 계시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만약 꿀벌들이 신성한 영감을 받지 못했다면 꿀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누에가 실을 낼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동물 엄마들도 새끼들을 그렇게 다정하게 돌볼 수 있었을까요?
요약하자면
12만 4천 명의 예언자들이 계시를 통해 보았고 느꼈던 하나님의 음성보다 더 명확한 진리가 있을 수 있을까요? 수십만 성자들의 기적, 수백만 현인과 지식인들의 이성과 통찰력, 그리고 그들의 마음과 통찰력보다 더 명확한 진리가 있을 수 있을까요?
반면에,
“만약 모든 바다가 당신 주님의 말씀을 적는 데 쓸 잉크가 된다 해도, 그리고 우리가 더 많은 바다를 가져와 도왔다 해도, 당신 주님의 말씀이 다 적히기 전에 바다가 먼저 다 닳아 없어질 것입니다.”
(알 카흐프, 18/109).
“만약 땅의 나무들이 펜이고 바다가 먹물이라면,
– 그리고 그 후로 일곱 개의 바다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
잉크가 다 떨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쓰여진 대로)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지혜와 최고의 지혜를 지닌 유일하신 분입니다.”
(알루크만, 31/27)
하나님의 말씀은 무궁무진하다는 성경 구절처럼 말이죠.
“하나님의 말씀은 무궁무진하다”
이는 그의 섭리의 경이로움이 무한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경이로운 것’이라는 단어는 놀라운 일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이 경이로움이 알라(Allâh)의 섭리 때문입니다.
“올”
순서대로 하는 거예요. 이것도 대화의 한 형태죠.
한 사람의 존재를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말입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천 개의 증거만큼, 심지어는 직접 눈으로 본 것만큼 그 사람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언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말로 하는 언어, 즉 말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언어, 즉 표현입니다. 둘 다 사람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말로 하는 언어의 말은 말 자체이고, 국가 언어의 말은 다양한 표현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는 그가 유일하신 분임을 나타내는 징후가 있습니다.”
그가 말했듯이
“모든 것에는 그분의 존재와 그분의 일체성을 보여주는 징후가 있다.”
이 광대한 우주는 있는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책과 같습니다.
이 우주와 그 안에 창조된 모든 것은 최고의 창조주를 표현하는 말들입니다. 만약 나무와 바다 — 예를 들어 — 존재의 책에 존재를 표현하는 모든 말을 적기에 충분하다 하더라도, 그 바다의 물방울과 나무의 입자들 또한 존재를 표현하는 말이며, 그것들을 적기 위해서는 같은 양의 나무와 바다가 필요하고, 이렇게 무한한 연속이 계속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말이라는 속성의 발현
그가 말한 말처럼,
권력 속성의 발현
그가 말씀하신 구체화된 말씀들이 있습니다. 지식의 속성에는 운명과 관련된 말씀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바로 그 말씀들입니다. 특히, 모든 작은 생물들은 신의 말씀입니다. 그것들은 말로 표현되는 말씀보다 더 강력하게 알라, 영원한 화자를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말에 국한되지 않고 행동으로 구체화되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피조물을 고려해 볼 때, 바다가 먹물이고 나무가 펜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을 모두 적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Nursi, Şualar, p. 128; Mektûbat, p. 448; İşâralu’l-İ’câz, p. 157 참조)
왜냐하면, / ~때문에, / ~처럼, / ~인 것 처럼, / ~하기 위해서, / ~하기 위하여,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 ~때문에
“우리가 무언가를 원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말은 ‘그대로 되라’입니다. 그러면 즉시 현실이 됩니다.”
(나흘, 16/40)
본문에서 명확히 알 수 있듯이, 모든 피조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창조되었습니다.
“올”
그들은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우주라는 거대한 책의 개별적인 단어이며, 그 자체로 단어입니다. 입자(원자)부터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는 신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은 코란의 해석자이며, 코란은 신의 구두 말씀입니다. 이 두 개의 신성한 말씀의 집합(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것)은 말씀과 행동으로 서로를 확인하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둘 다 동일한 최고의 존재의 이름과 속성의 나타남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해설가 이맘 파크르 알딘 알라지(Imam Fakhr al-Din al-Razi)가 말했듯이, 신의 창조, 즉 그의 창조적 행위와 그가 창조한 피조물에 나타나는 경이로움과 특이함, 다시 말해 놀라운 창조물, 존재, 그리고 그 존재에 담긴 신의 예술의 진리는 무한하고 고갈되지 않습니다.
(대주석, XXV/156-157)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신성한 예술과 그 안에 담긴 신성한 진실에 대해 쓰려면 나무도 바다도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다와 나무는 다 떨어지지만, 나의 주님의 말씀은 무궁무진합니다!
인사말과 축복을 전하며…
이슬람교에 대한 질문과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