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애하는 형제여,
세상에 살면서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누군가,
하나님이 향하시는 방향,
다른 하나
사람들을 향한 면.
하나님께로 향하는 태도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의식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 마치 모든 우주가 그 고요한 언어로 그를 칭찬하고 영광스럽게 하듯이 –
그는 또한 의식 있는 존재로서 마음과 영혼의 언어로 같은 공동체에 융합하고 종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나는 지니와 인간을 창조한 것은 그들이 나를 알고 나를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자리야트, 51/56)
문제의 구절은 이 진리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세상에서 사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는 필연적인 상황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이 죽음과 생명을 창조하신 것은 너희가 누구인지, 누가 선한 행실을 하는지 시험하기 위함이다.”
(소유권, 67/2)
해당 구절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의해 시험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삶과 죽음이 그러한 시험의 일부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사는 것은 시험을 받는 것과 같다.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삶을 평가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 세상에서 각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세계와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특별한 세계는 개인의 생각에 따라 형성되며, 삶의 목적 또한 자신의 내면 세계에 대한 인식에 따라 만들어집니다. 마치 세상이 안경의 색깔에 따라 다르게 보인 것처럼, 각자의 특별한 세계는 내면 세계의 “마음의 안경”의 색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어둠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빛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봄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즐거운 삶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슬픔으로 가득 찬 슬픔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내세의 약속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동물을 위한 목초지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배우야 할 신성한 편지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의지와 욕망에 봉사하는 세속적인 욕망입니다… 흑백무늬 옷을 입은 수도자의 생각은 그의 기억이고, 그의 기억은 그의 생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헌신적인 삶을 위해 먹고, 어떤 사람들은 먹기 위해 삽니다.
요컨대, 아래 번역된 구절이 가리키는 길을 따른다면 이 세상에서의 삶과 존재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영혼은 죽음을 맛볼 것이다. 그리고 너희 인간은 부활의 날에 너희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때 불에서 구원되어 낙원에 들어가는 자가 진정으로 성공한 자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삶은 속임수와 같은 덧없는 쾌락에 불과하다.”
(알-임란, 3/185)
인사말과 축복을 전하며…
이슬람교에 대한 질문과 답변